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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명랑한 버팀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풍랑의 연속이다. 사업이 흔들리고, 가족이 아프고, 믿었던 관계가 무너지고, 상상도 못 했던 사고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절망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묵묵히 버티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로 집을 잃은 교우를 만났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절망이 드리운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쌓은 소중한 추억도, 알뜰살뜰 마련했던 살림살이도, 당장 입을 옷가지마저 잿더미가 되었는데도 그의 입에서는 탄식 대신 긍정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면서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전쟁도 겪었고, 이민 와서는 4·29 LA 폭동도 견뎌냈다고 하면서 인생의 굴곡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지다 보니 웬만한 일들은 버텨낼 수 있는 ‘맷집’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 ‘맷집’ 덕분에 고난을 이기며 살았고, 고난 후에 오히려 더 큰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번 화재도 결국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숨 대신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노래는 큰 슬픔을 딛고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작곡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들으면서 그가 말한 ‘맷집’을 떠올렸다.     맷집이 좋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쓰러지지 않을 뿐이다. 맷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맷집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웃음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웬만한 어려움은 버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 맷집, 웃음’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때였다. 한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런 말들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진행자가 참석자들에게 사흘간의 세미나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다섯 글자로 정리하라고 했다. 재치와 의미를 담은 다섯 글자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세미나를 마무리할 때였다.     목회 현장에서 갓 은퇴했다는 강사 목사가 후배 목사들이 고군분투하는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명랑(明朗)한 버팀’이라고.   그가 말한 ‘명랑한 버팀’은 고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맷집의 고급스러운 표현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사람은 많다. 죽을 힘을 다해 견디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명랑하게 버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명랑한 버팀은 고난 속에서 밝음을 잃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유쾌하고 활발하게 지내는 것을 뜻한다. 고난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세상이 어려운 것은 고난 때문이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유쾌함을 잊었고, 밝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웬만큼 살았으면 어느 정도의 맷집은 갖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명랑하게 버티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다. 그 믿음을 갖고 오늘 하루도 명랑하게 버텨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버팀 고난 맷집 목회자 세미나 고난 때문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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